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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 회장의 한일 경제 연합, 이런 미래도 가능할 수 있다.

어제 삼프로 TV에서 SK 최태원 회장이 제시한 한일 경제 연합 담론은 단순한 발언이 아니라 한국 경제가 직면한 현실과 미래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화두였다. 우리나라 대표 기업의 수장답게 그의 시각은 냉정하면서도 광대했다. 최 회장이 지적했듯 이미 세계는 글로벌 시대를 마치고 새로운 분열과 냉전의 시계로 들어섰다. 그 배경은 분명하다. 약해진 미국과 강해진 중국, 그리고 기존 패권국이 신흥 강대국을 견제하기 위해 택한 강경한 대응이다.


바로 이런 지정학적 전환 속에서 세계 경제는 더 이상 자유무역의 낙관적 시절에 머물러 있지 않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필승하기 위해 관세와 보조금을 무기로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했고, 중국은 내수와 국가 자본을 앞세워 맞서고 있다. 반면 한때 양강 구도의 축이었던 유럽은 저성장과 정치적 분열로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시장은 ‘개방’이 아니라 ‘분할’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이는 수출 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에 커다란 도전을 안겨준다. 성장률이 0%에 고착되는 위험뿐 아니라 미중 갈등의 충격을 가장 먼저 받는 ‘새우등 터지는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까지 커진 것이다.


이 지점에서 SK 최태원 회장이 던진 솔루션은 단순하다. 바로 한일 경제 연합 혹은 통합이다. 그의 시각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을 경우 단순한 교역 확대를 넘어서는 구조적이고 전략적인 의미가 생겨난다. K3-Lab은 이를 내수시장·데이터·기축통화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분석해본다.


1. 내수시장의 결합: 2억 소비자의 힘

한일 경제 연합의 첫 번째 축은 바로 내수다. 한국은 제조업 경쟁력에서는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인구 5천만이라는 협소한 시장 규모가 발목을 잡는다. 수출로 경제영토를 넓혀왔지만, 냉전 구조로 재편되는 오늘날 이 인구 규모만으로는 글로벌 플랫폼을 키우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 반대로 일본은 인구 1억 2천만 명, 세계 3위 GDP라는 거대한 몸집을 가졌지만 장기침체와 고령화, 미래산업 경쟁력 부재로 성장 동력이 떨어져 있다.


그러나 두 나라가 결합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약 2억 인구와 7조 달러 내수 블록이 형성되며, 이는 미국·중국·EU에 이어 세계 4위 소비시장으로 부상한다. 무엇보다 이 시장은 단순한 인구 합계가 아니다. 양국 모두 1인당 GDP가 3만~4만 달러에 달해, 고소득 소비자가 밀집된 질 높은 시장이다. 기업은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안정적 매출 기반을 확보할 수 있으며, 동시에 “2억 소비자”라는 집단 구매력을 무기로 협상 테이블에 나설 수 있다. 관세를 쉽게 올리지 못하게 만드는 힘, 바로 이것이 내수가 주는 전략적 자산이다.


2. 데이터 결합과 AI 플랫폼 시너지

그리고 이런 내수 확대는 곧 데이터 확대와 연결된다. AI 패권 경쟁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배터리, 통신 등 제조업 전반에서 방대한 산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인구 규모가 작아 소비데이터는 부족하다. 반대로 일본은 큰 내수시장 덕분에 풍부한 소비데이터와 더불어 의료·재료·기초과학에서 축적된 독자적인 기초과학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두 나라가 손을 잡으면 산업·소비·기초과학 데이터가 삼각축을 이루며, AI 학습에 최적화된 종합 데이터 생태계가 완성된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를 따라가는 차원이 아니라, 동아시아형 AI 플랫폼을 독자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다시 말해, 내수시장은 데이터 기반을 지탱하고, 데이터는 AI 경쟁력을 강화하며, 이 모든 과정이 기술 패권으로 확장되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해진다.


3. 일본의 기축통화 지위: 자본의 무제한 공급

하지만 내수와 데이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그 모든 것을 성장으로 전환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답은 명확하다. 자본이다. 미국이 중국에 밀리지 않는 근본적 이유도 달러라는 기축통화 덕분이다. 달러를 무제한 공급하며 미래산업에 끝없는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은 성장의 우위를 지켜낼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성장성과 기술력을 갖췄지만 외환·금융 규제와 제한적 자본 동원력 때문에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다. 중국 역시 같은 문제로 고전한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일본은 여전히 엔화라는 준(準) 기축통화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순대외자산을 쌓아두고 있다. 성장 가능성이 확실한 투자처만 제시된다면 일본은 자본을 무제한 공급할 수 있다. 결국 한일 연합은 한국의 산업 경쟁력과 성장성에 일본의 기축통화 기반 자본력이 더해지는 조합이 된다. 이는 미국식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동아시아에서 복제하는 것이며, “돈이 있어야 미래산업을 장악한다”는 단순하지만 결정적인 조건을 충족시킨다.


4. 지정학적 의미와 글로벌 파급력

이런 구조는 단순한 경제협력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일 연합을 자국 공급망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안보와 투자 보장도 더 커질 것이다. 결국 이는 1등(미국)이 3등(일본)과 손잡아 2등(중국)을 견제하는 구도로 작동할 수 있다. 게다가 일본과 한국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맞닿아 있는 국가들이다. 그 파괴력은 단순한 경제적 계산을 넘어선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더욱 복잡하다. “2억 내수 + 첨단 데이터 + 기축통화” 블록이 동아시아에서 형성되는 순간, 중국의 수출 전략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미국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오히려 한일 연합과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둘 수밖에 없으며, 무조건 적대적으로 나설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한일 연대는 미·중 패권경쟁의 단순한 하위 변수가 아니라, 제3의 축으로 떠오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5. 투자적 함의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가장 큰 수혜는 명확하다. 우선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과 일본의 로봇·전력 인프라 기업이 직접적인 이익을 본다. 내수시장이 커지면 플랫폼·리테일·헬스케어 산업에도 성장 프리미엄이 붙는다. 금융적으로는 엔화 기반의 초저금리 자본이 한국 혁신산업으로 대규모 유입될 수 있으며, 새로운 금융상품—예를 들어 “한일 경제연합 ETF”—까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 자본의 직·간접 투자가 더 빠르고 강하게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다.


결국 한일 경제 연대는 과거처럼 단순히 무역 편익을 따지는 차원이 아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수많은 정치적 장애물과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가시밭길일 것이며, 실현 여부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내수(2억 소비시장) + 데이터(산업·소비·기초과학) + 기축통화(엔화)라는 세 축이 연결되면 완결된 경제 블록이 형성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AI 패권 시대에 제3극으로 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의미한다. 미국이 달러로 패권을 유지하듯, 한일 연대는 엔화를 자본 무기로 삼아 한국의 성장성과 결합하는 길을 만들 수 있다. 이는 동아시아판 국가자본주의 모델의 출현이자, 투자자에게는 강력한 미래 성장 스토리로 자리 잡을 것이다.


따라서 한일 경제 연합 담론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미래 세대가 반드시 고민해야 할 전략적 선택지다. 무시하기에는 너무 크고, 외면하기에는 너무 절실한 주제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가능성에 대한 냉정한 현실 인식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장기적 비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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