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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성장할수록 사모신용이 무너질 수 있다

산업 혁명은 언제나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철도도 그랬고 전력망도 그랬고 인터넷도 그랬다. 처음에는 기술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그 혁신의 결말은 자본 이야기로 귀결된다. 그리고 지금 AI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 상징적인 장면이 바로 NVIDIA다. 몇 년 사이 엔비디아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중 하나로 올라섰고 AI 산업의 중심에 서게 됐다. 구조는 단순하다. 엔비디아가 GPU를 팔면 AI 기업들이 그것을 구매하고 데이터센터 기업들은 그 장비로 클라우드를 구축한다. 그리고 더 큰 모델을 만들기 위해 다시 더 많은 GPU가 필요해진다. 결국 GPU 판매, 데이터센터 건설, AI 모델 개발이라는 세 단계가 서로를 정당화하며 다음 투자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돈이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자가 수요를 만들고 그 수요가 다시 다음 투자를 정당화한다. AI 산업은 지금 자본이 스스로를 증폭시키는 구조, 즉 자본 레버리지 엔진 위에서 돌아가고 있다. 기술로 시작된 혁신이 자본으로 귀결되는 역사 속에서 AI 역시 그 동일한 경로를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AI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보면 완전히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내고 있다기보다는 기존 소프트웨어 기능을 범용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케팅 자동화, 문서 요약, 고객 지원, 번역, 코딩, 기초 분석 같은 기능들은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다만 과거에는 각각의 SaaS 기업들이 서로 다른 기능을 나눠서 판매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AI는 이 기능들을 하나의 인터페이스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더 이상 여러 툴을 구독해 기능을 구매할 필요가 없다. 대신 하나의 모델에 지시를 내리고 결과를 받는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모델 자체의 변화에 가깝다. 과거 SaaS 기업들의 가치가 특정 기능을 가진 툴에 있었다면 AI는 그 기능 자체를 범용재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가장 선명한 사례 중 하나가 바로 Anthropic의 AI 모델 Claude다. 클로드는 단순한 챗봇이 아니다. 오히려 소프트웨어를 대체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에 가깝다. 사람들은 더 이상 프로그램을 열고 메뉴를 배우며 기능을 찾지 않는다. 대신 AI에게 말한다. 이 문서를 정리해 달라, 이 고객 문의에 답변 초안을 작성해 달라, 이 데이터를 분석해 달라, 이 코드를 수정해 달라.

과거에는 이런 작업을 위해 문서 툴, 고객지원 툴, 마케팅 툴, 분석 툴, 코딩 툴을 각각 구독해야 했다. 하지만 AI는 이러한 기능들을 하나의 모델 안으로 흡수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들에게 치명적인 이유다. AI는 특정 툴 하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SaaS 기업들의 핵심 기능을 동시에 압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AI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동시에 기존 소프트웨어의 필요성을 줄이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금융 문제가 시작된다. 많은 SaaS 기업들이 사적신용(Private Credit) 시장의 주요 차주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진다. AI가 성장할수록 오히려 사적신용 시장이 먼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신호를 은행들이 먼저 읽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JPMorgan Chase는 사적신용 담보가 되는 중소 SaaS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을 하향 조정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회계 조정이 아니다. 은행이 담보 가치를 재평가하고 대출 회수 논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다. Morgan Stanley 역시 비슷한 방향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일부 사적신용 펀드에서는 환매를 제한하는 게이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게이트는 언제나 같은 의미를 가진다. 겉으로는 시간을 벌기 위한 조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동성이 부족하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의 대표적인 뇌관 중 하나가 바로 Blue Owl Capital이다. Financial Times는 헤지펀드 Glendon Capital Management이 블루올의 사적신용 포트폴리오 밸류에이션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주장한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문제는 단순하다. 블루올 대출의 상당 부분이 소프트웨어 기업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AI는 바로 이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수익성이 약해지고 성장률이 둔화되며 기존 밸류에이션의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 위에 얹힌 대출 가치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제 문제는 장부를 넘어 자금 흐름으로 번지고 있다. 연기금 자금은 장기적으로 묶여 있지만 개인 자금은 다르다. 예를 들어 Blackstone의 사적신용 펀드 Blackstone Private Credit Fund (BCRED)에는 상당한 개인 자금이 들어와 있다. 불안이 커질수록 이 자금은 가장 먼저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사적신용 시장의 진짜 문제는 자산의 만기가 길다는 점이 아니라 투자자의 심리가 짧다는 점에 있다. 겉으로는 AI 파티가 벌어지고 있지만 뒤에서는 누군가 조용히 출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정책 문제가 등장한다. 지금 미국은 동시에 세 가지 압력을 받고 있다. AI 인프라 투자, 전쟁 비용, 그리고 사적신용 시장의 불안이다. 이 세 가지를 고금리 상태에서 동시에 감당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시장은 결국 같은 결론으로 향한다. 유동성이다.


만약 이 구조의 붕괴를 막으려면 시장 앞에는 하나의 유동성의 벽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벽을 고민해야 하는 곳은 분명하다. 행정부, 재무부, 그리고 연준이다. 지금 이들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AI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AI 붐이 흔들릴 때 금융 시스템을 무엇으로 받칠 것인가다.


그 유동성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금리 인하일 수도 있고 트럼프식 관세 배당금 같은 재정 유동성일 수도 있으며 글로벌 달러 수요를 흡수하는 스테이블코인 금융 인프라일 수도 있다. 형태는 달라도 목적은 같다. 자본 레버리지 엔진이 멈추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AI 투자, 데이터센터 건설, GPU 수요는 모두 레버리지 위에서 돌아간다. 그래서 이 엔진은 멈출 수 없다. 멈추는 순간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융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지금 시장은 AI 파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서는 누군가 이미 출구를 찾고 있다. 그리고 금융 시스템은 이미 다음 유동성의 벽을 기다리고 있다. 금리 인하, 관세 배당금, 스테이블코인 같은 유동성 말이다.


지금 시장이 기다리는 것은 AI의 다음 혁신이 아니다.

다음 유동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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