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접근을 막을수록, 오히려 유동성은 더 풀리는가
달러 제재와 스테이블코인, 그리고 ‘이중 유동성’의 가능성
Executive Summary
미국의 달러 제재가 강화될수록 기존 은행망을 벗어나려는 자금의 유인은 커진다. 그러나 달러를 대체할 통화와 금융시장이 부족하다면, 이 자금은 달러 자체를 버리기보다 달러에 접근하는 경로를 바꾸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내가 스테이블코인을 주목하는 이유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준비자산을 통해 미국 단기국채 수요를 만들면서, 동시에 온체인에서 거래에 사용할 수 있는 결제수단을 제공한다. 나는 이처럼 하나의 자금이 국채시장과 디지털 자산시장에 함께 영향을 미치는 구조를 ‘이중 유동성’으로 본다.
다만 이는 돈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유동성 확대의 정도는 자금이 어디에서 유입되는지, 실제로 스테이블코인 순발행이 증가하는지, 그 자금이 어떤 거래에 사용되는지에 달려 있다.
핵심 가설은 다음과 같다. 미국의 달러 제재가 기존 금융망 밖의 수요를 자극하고, 그 수요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흡수된다면 달러 패권은 블록체인 위에서 오히려 확장될 수 있다.
1. 달러는 싫지만, 대체할 통화도 마땅하지 않다
이란 항공사에 연료를 공급하는 곳의 달러 접근을 차단하겠다는 베센트의 경고는 달러가 결제수단이자 미국의 강력한 압박 도구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도구가 반복적으로 사용될수록 제재 대상국과 거래 상대방은 미국의 통제를 덜 받는 경로를 찾으려 할 것이다. 문제는 기존 달러 체계를 벗어난 뒤 어디로 갈 수 있느냐다.
BRICS의 대체 결제체계는 참여국 간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위안화 역시 국제적인 대체 통화가 되려면 자본 이동의 자유와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라는 과제를 넘어야 한다. 다른 신흥국 통화는 세계의 자금을 받아낼 시장의 깊이가 부족하다.
결국 달러 의존을 줄이고 싶은 수요와 달러의 유동성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 필요가 충돌한다. 이 모순이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을 살펴보게 만든다.
비트코인이 특정 국가의 통화 밖에 자산을 보유하는 선택지라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거래 경로를 바꾸는 선택지다.
2.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한 돈은 다시 미국 국채로 연결된다
해외자금 100달러가 신규 스테이블코인 발행으로 이어진다고 가정해보자. 발행사는 받은 자금으로 현금과 미국 단기국채 등 준비자산을 보유한다. 준비자산 중 국채에 배분되는 만큼 미국 국채 수요가 발생한다.
동시에 이용자는 100달러 상당의 스테이블코인을 받는다. 이 스테이블코인은 온체인에 남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거래하거나, 시장이 확대될 경우 토큰화된 주식과 실물자산을 결제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역설이 나온다.
기존 은행망을 벗어나려는 자금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할수록, 그 준비자산을 통해 미국 정부의 자금 조달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달러 스테이블코인도 미국의 통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중앙화된 발행사는 주소 동결과 제재 준수를 요구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 경로의 확산은 제재 대상자의 이동뿐 아니라, 제재 위험을 의식하는 주변국과 일반 이용자의 결제·저축 수요까지 함께 봐야 한다.
3. ‘이중 유동성’은 두 시장에 작용하는 구조다
스테이블코인의 영향은 온체인 결제수단 공급에서 끝나지 않는다. 준비자산 매입을 통해 국채시장에도 연결된다.
단기국채 수요가 공급보다 빠르게 늘어난다면 해당 국채금리에 하방 압력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정부의 단기 조달비용을 낮추고, 다른 자산의 상대적인 투자 매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온체인에서는 거래에 사용할 수 있는 달러가 늘어나고, 오프체인에서는 준비자산 수요가 금리와 자산 배분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이중 유동성’이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 발행만으로 금융시장 전체의 순유동성이 자동으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단기국채나 머니마켓펀드에 있던 돈이 이동했다면 국채 수요의 순증은 제한적일 수 있다. 은행예금에서 이동했다면 은행의 자금 조달에도 영향을 준다.
따라서 핵심은 발행 규모만이 아니다. 어디에 있던 돈이 들어왔으며, 새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이 얼마나 활발하게 사용되는지가 실제 효과를 결정한다. 단기국채 수요 증가가 장기금리 하락이나 주식·부동산 상승으로 곧바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4.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구조가 확대된다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서로 다른 경로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비트코인은 국가 통화와 금융기관 밖에 자산을 보유하려는 수요의 영향을 받는다. 이더리움은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자산의 발행·거래가 해당 네트워크에서 확대될 때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다.
다만 스테이블코인 증가가 두 자산의 가격 상승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스테이블코인은 송금과 저축에 머물 수도 있고, 거래가 다른 블록체인에서 늘어날 수도 있다. 네트워크 사용 증가가 토큰 가치로 얼마나 연결되는지도 별도의 문제다.
따라서 최근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상승을 이 논리로 해석하려면, 같은 기간의 스테이블코인 순발행과 거래소 유입, 온체인 활동이 함께 증가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상승을 설명할 수 있는 구조적 가설이며, 확인된 단일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
5. 투자 시사점: 달러 패권의 확장은 새로운 경로로 나타날 수 있다
나는 달러 제재가 강해질수록 달러 패권이 곧바로 약해진다고 보지는 않는다. 달러를 대체할 자산과 달러를 사용하는 새로운 경로는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달러 자체에서 벗어나려는 수요는 비트코인으로 향할 수 있다. 반면 달러의 가치는 유지하면서 기존 은행망 밖에서 거래하려는 수요는 스테이블코인으로 향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스테이블코인의 뒤에는 다시 미국 국채가 있다.
결국 지켜볼 것은 제재의 강도만이 아니다. 제재 이후 자금이 어디로 이동하고, 그 이동이 스테이블코인 순발행과 미국 국채 수요로 이어지는가다.
이 연결이 확인된다면, 달러 시스템의 문을 닫는 정책이 블록체인 위에서는 또 다른 달러 수요를 만드는 역설이 현실화될 수 있다. 크립토 시장을 바라볼 때 가격과 금리뿐 아니라, 달러가 유통되는 구조의 변화까지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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