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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워시 시대의 유동성 설계, 왜 유동성은 폭발할까?

새로운 연준 의장 케빈 워시가 설계하는 금융 시장은 과거의 문법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그는 연준의 대차대조표를 축소(QT)하면서도 금리를 인하하는, 언뜻 보기에 모순적인 행보를 예고한다. 그러나 이 설계의 본질은 중앙은행이 독점하던 유동성 공급의 권한을 민간으로 이양하고, 정체된 자산의 회전 속도를 극대화하여 경제 전체의 유동성 효율을 높이는 데 있다.


1. 유동성의 본질적 변화: M에서 V로의 이동


전통적인 화폐수량설 방정식 $MV = PY$에서 지난 10년의 연준은 오직 통화량($M$)에만 집중했다.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QE)를 통해 시장에 달러를 무한정 살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는 자산 가격의 거품과 인플레이션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워시의 전략은 이 패러다임을 통화 속도($V$)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는 "연준이 직접 돈을 찍어 뿌리는 시대는 끝났다"라고 선언한다. 대신, 시중에 이미 풀려 있는 막대한 자산들이 멈추지 않고 빠르게 순환할 수 있는 '금융 배관'을 수리하는 데 집중한다. 연준의 자산은 줄어들지만(M 감소), 그 자금이 도는 속도가 몇 배로 빨라진다면(V 증가) 시장이 체감하는 유동성 총량은 오히려 늘어나는 원리이다.


2. 유동성 가속의 핵심 기제: 은행 시스템의 재가동

워시가 설계한 유동성 엔진의 핵심은 상업은행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두 가지 강력한 촉매제를 투입한다.


(1) 장단기 금리차(스티프닝)를 통한 보상 체계


은행은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 높은 이자로 대출해주는 예대마진(NIM)으로 생존한다. 워시는 단기 금리를 적극적으로 인하하여 은행의 조달 비용을 낮춰주는 동시에, 대차대조표 축소를 통해 장기 국채 공급을 늘려 장기 금리를 떠받친다. 이렇게 수익률 곡선이 가파르게 서는 '스티프닝'이 발생하면 은행은 시장에 신용을 공급할 강력한 경제적 유인을 갖게 된다.


(2) SLR 규제 완화와 장부의 자유

아무리 마진이 좋아도 규제가 발을 묶으면 소용없다.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과 같은 규제는 은행이 안전한 국채를 보유하더라도 총자산 한도에 걸려 레포(Repo) 시장에서 자금을 회전시키는 것을 방해해 왔다. 워시는 이 규제를 완화하여 은행이 국채를 담보로 더 많은 거래를 떠받칠 수 있는 '장부상의 여유'를 제공한다. 이는 곧 통화 속도의 폭발적 상승으로 이어지는 물리적 통로가 된다.


3. 스테이블코인: 민간판 국채 흡수 장치와 유동성 혈관

이 구조에서 가장 혁신적인 장치는 스테이블코인이다. 연준이 국채 매수(QE)를 중단할 때 생기는 공백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메우게 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유입된 달러로 단기 국채(T-bill)를 사들인다. 이는 시장의 국채 수요를 뒷받침하는 동시에, 민간이 보유한 국채를 가장 고품질의 담보로 변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에 묶인 담보는 은행의 기존 레버리지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사실상 규제 밖에서 유동성을 증폭시키는 '민간 국채 흡수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4. TGA와 지급준비금의 선순환 메커니즘

이러한 민간의 흐름은 재무부의 계좌(TGA)와 결합하여 완성된다.


  1. 자금의 응집: 스테이블코인이 국채를 매입하면 자금은 잠시 재무부의 TGA 계좌로 모인다.

  2. 자금의 환류: 재무부가 이 예산을 지출하는 순간, 돈은 다시 민간 은행 계좌로 꽂히며 은행의 지급준비금을 늘린다.

  3. 유동성 증폭: 늘어난 지급준비금은 은행 시스템에 여유를 만들고, 이는 다시 MMF와 레포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자금 공급의 선순환을 만든다.


결국 '스테이블코인(담보) - 재무부(환류) - 은행(신용 창출)'이라는 삼각 편대가 중앙은행의 도움 없이 스스로 유동성을 창출하는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5. 문제는 '시스템의 연쇄 취약성'과 '통제권의 실종'이다


워시의 정교한 설계는 시장에 풍요로운 유동성을 약속하는 듯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과거보다 훨씬 위험한 구조적 결함이 숨어 있다.


  • 문제는 유동성 통제권이 연준의 손을 떠난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이 수도꼭지를 쥐고 있을 때는 과열 시 즉각적인 제동이 가능했다. 그러나 유동성 공급 주체가 민간 은행과 스테이블코인으로 넘어가면, 시장이 광기에 빠져 속도(V)를 제어 불능 상태로 높일 때 연준이 이를 통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 문제는 '담보의 연쇄 반응'이 가질 파괴력이다.

    이 시스템은 국채를 담보로 한 반복적인 레버리지(회전율)에 기반한다. 만약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신뢰 위기가 발생하거나 국채 시장의 변동성이 임계치를 넘으면, 속도에 의존하던 유동성은 순식간에 증발한다. 이는 과거의 뱅크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시장을 붕괴시키는 '하이퍼-디플레이션' 쇼크를 유발할 수 있다.

  • 문제는 자산 양극화의 가속화이다.

    속도 중심의 유동성은 실물 경제로 스며들기 전, 금융 자산(주식, 코인, 부동산)의 가격을 먼저, 그리고 더 강력하게 밀어 올린다. 이는 근로 소득보다 자산 소득의 격차를 극단적으로 벌려 사회적 불평등과 정치적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케빈 워시 체제의 유동성 전략은 "중앙은행의 부채를 민간으로 이전하면서도 시스템의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위험한 실험"이다. 이 설계가 성공한다면 시장은 연준의 자산 축소라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유례없는 유동성 랠리를 경험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고리 중 단 하나라도 끊어지는 순간, 우리는 통제 불가능한 변동성의 시대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 구조의 완성은 시장의 신뢰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곧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금융적 리스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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