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미국이 언급한 유럽 문명 소멸, 사실은 달러 패권 때문

최종 수정일: 4일 전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서(NSS)는 표면적으로 유럽을 향해 “문명의 소멸”이라는 언어를 던졌다. 그러나 이 발언의 본질은 문화나 가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신용의 문제이며, 통화의 문제다. 미국은 이번 보고서를 통해 사실상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유럽이 더 이상 스스로의 성장으로 존재하지 못한다면, 그 체제는 달러의 신뢰를 해친다는 것이다.

달러 체제 내부에서 유로는 단순한 지역통화가 아니다. 유로는 달러와 동일한 결제망 안에서 작동하는 내부 신용통화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연준(Fed)과 상시 스와프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유럽의 금융기관들은 글로벌 은행결제망을 통해 언제든지 달러를 조달할 수 있다. 따라서 유로의 과잉발행은 단순히 유럽 내부의 통화팽창이 아니라, 달러의 신용을 희석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미국이 찍을 의도가 없던 달러가 다른 국가를 통해 세상에 흘러나오는 셈이다.

문제는 이 신용이 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럽은 제조업의 경쟁력을 잃고, 금융과 행정, 서비스 중심의 저성장 구조로 고착되었다. 새로운 통화는 생산설비나 혁신에 투자되지 않고, 복지정책이라는 정치적 안정장치에 흡수되고 있다. 이민자 보조금, 실업수당, 연금, 에너지 보조 같은 이전지출은 경제의 근본을 강화하지 못한다. 결국 유로화는 성장의 연료가 아니라 복지의 진통제가 되었다.

K3-Lab
K3-Lab

미국의 입장에서 이것은 단순한 유럽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유럽이 유로를 찍는 순간, 그 유동성은 달러 결제망 내부로 흘러들어간다. 유럽의 금융기관들이 달러표시 원자재를 사들이거나, 글로벌 투자자금이 유럽 채권으로 이동하면, 달러의 유통량도 함께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진짜 문제는 세계적 위기 시점이다. 유럽의 신용시장이 흔들리면, 연준은 스와프라인을 통해 유럽에 달러를 공급해야 한다. 즉, 유럽이 통화팽창으로 스스로 위기를 초래하면, 그 비용은 미국이 부담해야 한다. 결국 유럽의 부채와 복지는 미국의 재정과 통화정책에 직·간접적인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NSS가 말한 “유럽 문명의 위기”가 단순한 정치적 경고가 아니라는 이유다. 유럽의 복지지출은 통화적 관점에서 보면 “비생산적 신용팽창”이다. 그 신용은 성장으로 회수되지 않고, 글로벌 결제망 안에서 죽은 돈(dead money)으로 남는다. 유럽은 유로를 찍지만, 실질적으로 그 신용은 달러의 신뢰를 기반으로 유지된다. 그리고 그 신용이 생산성이 아닌 복지로 쓰일 때, 미국은 달러 체제 전체의 신용을 지탱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찍어야 한다. 그 결과는 명백하다. 달러의 실질가치는 떨어지고, 미국 내부의 인플레이션 압력은 커진다. 미국에게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좀 더 명확히 이 구조를 이해하려면 달러 시스템의 계층을 봐야 한다. 전 세계 통화는 달러를 중심으로 계층화되어 있다. 최상단 L1에는 달러, 유로, 엔화, 파운드처럼 글로벌 결제망 안에서 바로 교환되는 통화가 있고, 그 아래 L2.,L3에는 원화, 대만달러, 바트처럼 외부 통화가 있다. 유로는 달러 체제의 내부통화로서 수요가 없어도 교환이 이루어진다. 반면 예를 들어 L3에 속한 원화(KRW)는 외부통화이기 때문에 달러를 사고파는 상대방이 존재해야만 거래가 성립한다. 이 차이가 유로의 특권이며, 동시에 달러의 부담이 되는 것이다.

유로와 달러
유로와 달러

즉, 유로는 달러의 내부신용이면서도 미국의 통제 밖에 존재한다. 미국은 유럽의 통화발행을 제한할 수 없고, 유럽이 복지에 돈을 쓰든 기업에 쓰든 관여할 수 없다. 그러나 유럽의 통화팽창이 위기를 불러올 때, 연준은 스와프라인을 열어달러를 공급해야 한다. 유럽이 신용을 늘릴수록, 그 부메랑은 미국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미국이 유럽의 복지정책을 “문명의 문제”로 포장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통화정책의 위협”으로 인식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미국의 선택지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유럽이 복지국가에서 벗어나 성장국가로 전환하도록 압박하는 것. 둘째, 유럽이 더 이상 달러 체제 내부에서 지속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붕괴하도록 두는 것. NSS의 어조는 분명히 이 두 번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미국은 이제 유럽을 “도와야 할 동맹”이 아니라, “달러의 신용을 잠식하는 내부 변동성”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단순히 미국의 패권이 아니라 달러 시스템의 생존과 직결된다. 유럽이 복지 중심의 저성장을 지속하면, 달러 결제망 내부에 회수되지 않는 신용이 쌓이고, 그 부채를 정리하기 위한 스와프와 구제금융은 미국의 통화정책을 압박한다. 연준이 금리를 조절하고도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글로벌 내부신용의 비효율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이 말한 “유럽이 미국에 해를 입힐 수 있다”는 발언의 진의도 여기에 있다. 그는 유럽이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 금융적 리스크라고 본다. 유럽이 구조개혁 없이 복지정책을 지속하면, 그 부채는 달러로 표시된 글로벌 자산시장을 왜곡시키고, 결국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교란시킨다. 이는 달러 패권의 약화로 이어지며,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부의 신용구조까지 흔들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미국의 전략은 명확하다. 유럽이 살아남으려면 복지와 이민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성장으로 유로의 신용을 회수하지 못한다면, 유럽은 달러 시스템 안에서 “소비만 하는 내부 블록”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미국은 그런 파트너를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붕괴시키고 새 질서를 짜는 것이 낫다고 본다. NSS가 말하는 “유럽의 문명 소멸”은 결국 “달러의 신용을 지키기 위한 구조적 선택”이다. 유럽은 이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댓글


bottom of page